나는 늘 ‘손이 먼저 움직이는 작가’다. 도자기를 빚을 때나 그림을 그릴 때, 또는 화피월드라는 나만의 세계를 펼칠 때도 과정의 시작은 언제나 감각이다. 먼저 느끼고, 몸이 움직이고, 마지막에야 생각이 따라온다. 언어는 항상 마지막에 붙는 설명일 뿐이다. 이런 작업 방식은 내 작품을 어디에도 쉽게 분류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공예와 회화, 이미지와 사물, 본능과 사유 사이에서 늘 경계에 머무는 듯한 느낌이 있다.
이번 프로젝트는 바로 그 경계에서 한 발 더 들어가, 옻칠이라는 느리고 살아있는 재료를 통해 자연, 시간, 인간 내면의 관계를 사유하려는 여정이다. 빠름이 미덕이 되어버린 시대에서, 나는 ‘기다림’이라는 감각을 되찾고자 한다. 기다림 속에서 스스로의 내면을 더 깊게 바라보고, 자연과 인간이 만나는 철학적 대화를 시도하고 싶다.
내가 만난 재료 중 옻칠은 가장 ‘느린 존재’다. 한 겹의 옻을 바른 후에는 바람, 습도, 온도 등 보이지 않는 자연의 조건이 맞아야 다음 칠을 할 수 있다. 이 기다림은 단순한 작업의 텀이 아니라 내면의 고요가 몸 안으로 스며드는 시간이다. 옻칠을 하며 나는 내 호흡의 리듬, 손끝의 떨림, 조급함과 그 조급함을 다독이는 자연의 시간성을 마주한다. 그것은 제어가 아니라 대화이며, 일방적인 창작이 아닌 함께 호흡하는 리듬이다.
이 프로젝트는 옻판을 만드는 일에서 시작한다. 나무를 고르고, 표면을 다듬고, 옻을 입히고, 다시 말리고 닦는 모든 과정은 기록된다. 나는 이 과정 속에서 떠오르는 세세한 감정과 감각의 변화를 놓치지 않기 위해 작업 일지를 쓴다. 때로는 짧은 시로, 때로는 단편적인 사유의 메모로 남긴다. 그것은 거창한 ‘독백’이 아니라, 느림을 통해 열린 정신의 문틈 사이로 흘러나오는 미세한 목소리다. 이 반복적인 수행을 통해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내면의 풍경을 보게 되고, 연습하듯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든다. 나는 이것이 수행의 진짜 이점이라고 믿는다
나는 이 프로젝트가 ‘공예’나 ‘회화’ 같은 기존 장르에 갇히지 않기를 바란다. 옻칠은 기술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연의 숨결이자, 나와 세계가 만나는 경계면이다. 이 경계 위에서 나는 감각을 회복하고, 그것을 관객에게 나누고자 한다. 내 작업은 결국 세상에 던지고 싶은 질문이기도 하다.
“우리는 얼마나 기다릴 수 있는 존재인가?”
“기다림 속에서 남는 것은 무엇인가?”
“느림은 결핍이 아니라 깊이에 이르는 문이 될 수 있는가?”
나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빠른 속도에 지친 사람들, 내면이 메마른 이들, 그리고 삶의 리듬을 되찾고 싶은 이들과 조용한 대화를 나누고 싶다. 옻칠의 겹겹이 쌓인 표면은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될 것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침묵의 거울이 될 것이다. 나는 그 둘 다가 되고 싶다.
또한 이 작업은 화피월드라는 나의 세계관과 맞닿아 있다. 화피월드는 현실에서 배제되거나 억눌린 감정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이다. 나는 옻칠을 통해 그들이 머물 수 있는 상징적 공간이나 집을 만들고 싶다. 도자기와 옻칠이 만나는 조형물은 오랫동안 꿈꿔온 작업 방식이자, 내 세계의 또 다른 확장이다.
결국 내가 원하는 것은 하나의 전시나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다. 나는 작업 자체가 철학이 되고, 과정이 메시지가 되는 예술을 실현하고 싶다. 예술은 내게 단순한 표현 수단이 아니라 생존의 언어이자 내면을 해독하는 방식이다. 나는 이 느리고 조용한 수행을 통해 세상과 나, 자연과 인간, 기술과 감정이 만나고 조율되는 순간을 만들고 싶다. 그리고 그 순간은 비단 나만의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모든 이들이 함께 느낄 수 있는 깊이의 대화가 되기를 바란다.